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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있다면 그곳은 공항이 아닐까.
비행기는 한 번씩 위아래로 흔들렸고, 그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죽음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하루카는 오사카를 한 바퀴 감아서 교토로 간다. 하루카에서 본 오사카의 모습은 신선했다. 기차를 타고 한국을 둘러본다면 몇 개의 높은 건물에 가려져 전체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 힘들 텐데, 건물이 대체로 낮아서 조금만 높은 지대로 올라가도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짱구를 볼 때마다 일본인은 대체로 주택에 사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오사카는 짱구네 마을 같은, 그러니까 낮은 주택이 많은 느낌이었다. 모든 집이 일본식 가옥은 아니었으나(간간이 심즈에서 나올 것 같은 집도 눈에 띄었다) 일본식 가옥도 꽤 자주 보였다. 감귤나무로 보이는 나무도 있었는데 오사카는 제주도와 기온이 비슷한 걸까. 아니면 감귤나무가 아니겠지. (주황색 열매가 매달려 있으면 다 감귤나무일 것만 같다) 운이 좋으면 2월에도 이른 매화를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창밖으로 매화나무가 보였다. 볕이 잘 들었을 곳은 벌써 만개했고, 꽃망울만 맺힌 나무도 있었다. 교토도 매화가 피어있을까. 두근두근.
일본은 빨래를 밖에 널어두는 것이 일상인 모양이다. 집집마다 빨래의 색깔도, 너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빨래를 널었을 사람들, 그리고 빨래의 주인을 상상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좋아졌다.
알록달록한 집 사이로 회색 네모난, 재미없게 생긴 건물이 눈에 띄었다. 학교. 재미없는 곳 맞네.
묘지로 추정되는 공간을 서너 곳 봤다. 마을 안에 위치한 묘지를 보며 일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생과 사는 그렇게 멀지 않다고, 죽음은 도처에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할까? 묘지 근처에 집이 있다면 좀 섬뜩할 것 같은데.
Fluffy 한 핫케이크 먹고 싶다.
신오사카역 근방에는 높은 건물이 꽤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감히 내가 그들의 치열할지도 모르는 인생을 논하는 것이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주택가마다 놀이터가 꽤 많다. 체감상 묘지의 서너 배 정도. 내가 어릴 때 탔을 법한 촌스러운 미끄럼틀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저 놀이터를 관리하는 건 누구일까? 좀 더 현대식 시설로 교체할 생각은 없는 걸까?
백로다!
교토다!
반팔티에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장을 누비는 아이들을 봤었다. 이거 우리나라였으면 학부모가 교육청에 신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날씨에 반팔이라니!) 오사카 쪽은 벌써 반팔에 반바지를 입을 정도로 따뜻한가? 싶은 생각에 이내 단념했었다. 그러나 역 밖으로 나오니 날씨는 꽤 쌀쌀했고, 사람들도 코트나 패딩 차림이었다. 이거 신고감 아냐!? 일본은 아이들을 참 강하게 키우는구나.
방문하고 싶었던 곳 중 '테와라야 료칸'이 있었다. 300년 전통의 료칸으로 임경선 작가님이 '양질의 고독감'을 느낄 수 있다더라-하는 글을 써 두셔서 궁금했다. 1박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말에 가격은 찾아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길에 한 번 찾아가 봤는데 외관은 생각보다 큰 특징이 없어 보였다. 300년씩이나 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니까 관리를 잘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크게 튀어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맞은 편에도 료칸이 있었는데 때마침 손님이 밖으로 나왔다. 직원은 먼저 나와 문을 열어주고, 손님이 떠나갈 때까지 허리 숙여 인사했다. 고독은 잘 모르겠지만, 존중받는다는 기분은 확실히 느낄 수 있겠는걸.
로쿠요사. 하우스 브랜드 커피와 도넛으로 유명한 카페. 도넛은 한정 수량 판매라 못 먹을까 봐 걱정했는데 5시 조금 넘어서 방문했음에도 있다고 해서 (아리마스요네!) 냉큼 주문. 옛날에 엄마가 튀겨주시던 그런 도넛이었는데 갓 구운 것처럼 따뜻했다.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그 단면을 커피에 적셔 먹으니 '어른 놀이'를 하는 어린이가 된 것 같은 만족감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흡연카페라 비흡연자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우리 아빠는 흡연자니까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방문했었다. 6시가 넘어가니 (6시를 기점으로 카페→바가 된다고 한다.) 확실히 흡연자가 많아지고…. 일본 담배는 한국 담배보다 독한 걸까. 눈이 매웠다. 남은 커피를 급히 마시고 폰토쵸로 향했다.
호스텔 직원분이 밤에 폰토쵸 거리를 걸으면 좋다고 해서 구경하러 갔으나, 자꾸 구글맵이 길이 아닌 곳을 가리켜서 그냥 카모강을 끼고 걸었다. 일본은 등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데 카메라가 그 등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서 아쉬웠다. 폰토쵸 거리는 다음에 방문해야지.
돌로 된 미끄럼틀이 있는 공원을 발견했다. 돌 미끄럼틀은 처음이라 한번 타보고 싶었다. 1Q84에서 아오마메가 미끄럼틀에 앉아있던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미끄럼틀은 생각보다 반들반들했고 덕분에 꽤 빠른 속도를 즐길 수 있었다. 재미있어서 세 번 탔다.
화요일도, 수요일도 비 예정.
어제 잠을 설쳤으니, 오늘은 조금 일찍 잘 수 있지 않을까? 8시 16분. 벌써 피곤하다.
씻고 자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10시 26분이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르니 호스텔에서 우산을 빌려야겠다. 좀 일찍 나가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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