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벌레
언제부터인가 눈에 띄게 쌀벌레가 많아졌다. 모기나 파리처럼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지는 않기에 한 두 마리가 있을 때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는데, 그 수가 많아지니 벽에 가만히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선사한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모기가 아니라면, 나는 내 손으로 벌레를 잡는 일이 드문데 화랑곡나방의 수가 늘어나니 알 수 없는 불쾌함에 이것들을 잡기 시작했다.
나는 벌레를 잘 못 잡는다. 아마도 손이 느린 탓이리라. 그래서 벌레를 잡기보다는 손을 휘휘 내저어 내 주변에서 쫓아내는 게 대부분인데, 화랑곡나방은 내가 여태껏 만난 다른 벌레들과는 좀 달랐다. 보통은 잠시 앉아 지친 날개를 쉬던 중이라도 내가 손을 휘저으면 으레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곤 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날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나를 피하려고 날개를 펴지 않았다. 그들은 꽤나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는 두 눈을 나방에게 고정한 채 물티슈를 한 장 집어 들고서 조심스럽게 그들의 등을 덮치곤 했다. R.I.P.
앉은자리에서 다섯 마리를 해치우고 나서 생각했다. 바뀌어야 할 때, 날아올라야 할 때를 알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하여.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흐지부지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아져서는 저 녀석들과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땐 가만히 있기만 해도 뒤처지는 거야. 어느 책에서 읽었을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