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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3. 행복의 온도

도하르방 2019. 10. 23. 17:51

 '행복의 온도'라는 말을 듣자마자 온기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행복이란 천 원에 세 마리 하는 붕어빵, 따뜻한 물 속에서 긴장을 풀고 늘어져 있는 순간, 진한 핫 초콜릿과 마시멜로 같은 것들일 테니까. 조금만 더 일찍, 그러니까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의 끝물에 누군가가 '행복의 온도'를 물었다면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빙수, 빨갛게 잘 익은 수박, 가느다란 바람결에 울리는 풍경 소리를 답했을 테니 말이다.

 팟캐스트를 듣던 중 진행자분이 "행복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나는 그 순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이어지는 설명: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 그때가 행복했었다고 하고 생각했던 적은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행복의 온도가 상대적인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다른 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는 행복했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은 행복한 편이야. 순간과 순간을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언제가 더 행복한지를 판단하려고 한다면, 내가 행복했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이 끝나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 말을 듣고 내가 멈칫했던 건 내 삶의 곳곳에서 나는 행복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의 온도라는 단어에서 구체적인 예시를 떠올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 그와 나의 행복의 정의가 다른 것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행복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 1.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 2. 복된 좋은 운수. 두 사전적 정의를 확인하고 나니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행복은 1에 가깝고, 그가 언급했던 행복은 2에 가깝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행복은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일 수도 있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되돌아보는 과거의 어느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타인도 내가 가진 단어의 정의와 같은 정의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제해버리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기본 전제가 달라서 발생하는 문제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냐며 섣불리 상대방을 오해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단어를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다르다며 섣불리 선을 긋기보다는 우리가 어딘가에서 다른 전제 조건을 가진 건 아닐까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시선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