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니다/이민경 작가님 대구 워크숍

2020년 1월 10일: 유럽 낙태 여행

도하르방 2020. 1. 11. 18:16

110일 금요일 [과제]: 책을 읽고 2018년 여름을 기점으로 임신 중단에 대한 나의 관점의 변화를 묘사하는 글쓰기

 

 천주교 유치원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던 나의 신앙생활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가치관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중에서도 원죄에 대한 믿음과 높은 도덕적 잣대는 신앙생활을 끝낸 이후에도 꽤나 오랫동안 나의 일상을 통제했다. 이런 나에게 낙태라는 단어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더럽히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낙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낙태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갖게 되었다.

 20194월 낙태죄가 폐지되기 직전의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고 말하곤 했다. ‘세입자 쫓아내는 건 건물주 마음인데 태아를 쫓아내는 건 왜 여성 마음대로 할 수 없냐.’는 어떤 자매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안에는 낙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너무 많았고, 그것을 하나씩 깨부수어 나갈 정도로 나는 강하지 못했다. 아니, 내 안의 불편함과 싸우고 싶지 않아 회피했으니 비겁했다는 표현이 옳겠다.

 이번에 유럽 낙태 여행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내 안에 잘못된 가치관들을 마주 볼 수 있었다. 섹스로 인한 쾌락이 죄라면 어째서 그 형벌은 여성에게만 내려지는가. 과거 한국은 생명의 소중함을 근거로 임신 중단을 반대하고 있었지만, 부분적으로 우생학적, 유전학적, 전염성 질환이 있는 아기의 경우- 임신 중단을 허용함으로써 어떤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임신 중단당한 태아의 슬픔을 보다도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기와 그의 가족이 겪을 슬픔이 더 크지 않은가. 미처 보지 못했던 방향에서 새롭게 문제를 보게 되면서 어딘가에 내재되어 있던 임신 중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워낼 수 있었다. 또한 여성의 시민권뿐 아니라 태어난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주기 위해 임신 중단권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임신 중단의 필요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