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니다/단상들

2020.02.15. 전하지 못한 마음

도하르방 2020. 2. 15. 20:47

 어려서는 '네가 좋다'는 말을 하지 못해 애꿎은 너의 인형만 만지작거렸고,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해 네 필통 속 물건들에 관심을 보였다. 지금도 '네가 보고 싶다'는 말이 낯부끄러워 너희 집 개가, 고양이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나를 보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는 서툰 모양이다. 아무 일도 없는데 그저 네가 보고 싶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고작 이런 일로 너에게 연락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고민의 끝은 언제나 '다음에 하지 뭐.'로 끝나곤 한다. 좀 더 그럴싸한 이유가 생길 때까지 미뤄보는 거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

 좋아하는 독립서점이 있었다. 너무 좋아서 차마 입고 문의를 드리지 못했던 서점이었다. 단정한 이름, -아니, 어째서 독립서점 사장님들은 서점의 이름을 이렇게나 각자의 공간에 어울리게 잘 짓는 것일까- 하얀 공간, 통유리로 이루어진 가게 앞에는 노란 자전거가 서 있었다. 그 공간을 보면 '오후 두 시'가 떠오르곤 했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질 시간, 통유리창으로 부서져 들어오는 햇볕을 만끽하기 좋은 시간. 책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디자인 문구들은 다른 독립서점과는 차별되는 특징이었다. 딱히 살 일도 없었건만, 나는 책방지기님이 하나씩 골랐을 문구류며 잡화를 유심히 살피곤 했다. '많은 것들 사이에서 '이런' 것들을 골라내는 안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입고 문의 메일을 보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두 통의 메일이 왔는데, 첫 번째 메일은 입고 거절 메일이었고, 두 번째 메일은 입고 요청 메일이었다. 공간상의 문제로 입고 거절 메일을 보냈었는데, 자꾸만 내 글이 생각이 나서 책을 입고하고 싶다는 내용의 두 번째 메일은 심장을 쿵쿵 뛰게 했다. 자꾸만 생각나는 글, 다른 글도 읽고 싶어지는 글이라는 말을 내 글이 들어도 되는 걸까. 꼭 입고하고 싶었던 공간인 만큼 그런 답장이 더 감사하게 느껴져서 평소보다 조금 긴 답장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우체국 택배를 통해 네 권의 책을 보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점을 정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좋은 일이 생겨서 정리하는 것이라고는 하셨지만,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책방지기님의 짧은 글에서도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2월 말까지만 운영하고 정리한다는 글에 급하게 2월 달력을 봤지만, 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공간을 오래도록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바라만 보다가, 가보지도 못한 채 그 공간이 사라지는 과정까지도 지켜만 보게 된 것이다. 서글픈 마음이 차올라서 왈칵 눈물이 났다. 마음을 조금 추슬렀다가 아쉬운 마음과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메일을 보냈다. 몇 번을 다시 쓴 문장이, 고르고 고른 단어가 한 번의 클릭으로 책방지기님께 가닿는 모습을 보니 괜히 울적해졌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건 참 힘든 일인데, 그것이 전달되는 건 순식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나를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나 혼자서만 그 감정을 꼭꼭 끌어안고 있겠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무엇이 있던가. 좋아하는 공간이 마지막을 맞이하기 전에, 꼭꼭 숨겨만 두었던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리라. 강아지가, 고양이가 아니라 네가 보고 싶다고. 다음이 아니라 이번 주말에, 이번 달 안에 보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