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르방 2019. 1. 4. 13:30

 《치유를 위한 글쓰기》라는 표현을 들었던 적이 있다. 마음 밑바닥까지 내려가 나 자신을 만나는 과정에서 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사실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이별을 경험하고 나니 그게 생각이 났다. 그래서 짧게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다. 이별 후의 '나'보다 주변의 반응들에 더 관심을 가졌다. 사실 나는 항상 그랬다. '나'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았다. 대학생 때는 친구들을 분석해서 생일날 리포트로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물론 대부분의 친구는 싫어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반복해서 '내가 잘못했다'고만 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라도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나에게 관심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가 헤어지게 된 이유를 하나씩 찾아 나섰다.


 하나씩, 하나씩 나는 남자친구를 믿겠노라고 덮어두었던 일들이 사실은 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나를 갈아 넣어서 유지하고 있었던 사랑'이었던 거다. 글을 쓸 때마다 헤어졌어야 했던 순간들이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소설이었다면 여기서 끝냈어야 했는데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았다. 어려서부터 소설을 읽는 걸 좋아했기에 상황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데 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니 나의 아픔을 직시하지 못한 채 관계를 유지해 온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상처받은 내가 보였고, 그걸 숨겨왔던 내가 보였고, 그 내가 너무 가여웠다. 나는 나에게 지독하게도 잔인한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는 내가 회피형 성격이라고 했다. 맞다. 나는 회피형 성격을 갖고 있다. 다만 그가 착각했던 건 내가 회피형 성격이 있어 자꾸만 우리 관계를 끝내려 했던 게 아니라, 내 회피형 성격 때문에 진작에 끝냈어야 했을 관계를 너무 오래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오래, 혼자 아팠다. 나 자신에게조차 외면당한 채. 그때의 나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어렸던 나에게 미안해할 수밖에 없고, 지금의 나를 좀 더 잘 보듬어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가 된 나는 내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좀 멋지지 않으면 어떤가.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보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부터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