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니다

습관 -첫사랑

도하르방 2018. 12. 2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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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정신을 차려보니 수업 시간이 끝났다. 오늘도 온종일 네 생각만 하다가 끝이 날것만 같다. 정신차려! 찬물로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다음 시간엔 수업 들어야지. 이제 시험도 얼마 안남았는데…

며칠 전부터 네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벌써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으니 반년 가까이 같은 반에 있었지만, 며칠 전까지는 반에 이런 녀석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왜 같은 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다시 종소리가 들린다. 다음 시간은 뭐였더라.

결국 이렇게 오늘 하루가 끝이 났다. 예전 같았으면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 밖으로 나갔을텐데, 요즘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교실에 눌러앉아있다가 네가 교실을 나가면 그제야 밍기적 밍기적 걸어 나간다. 비록 말한마디 건네지 못하더라도, 네가 나를 봐주지 않더라도,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아- 뭐야. 이런 기분 싫다. 내 기분이 전적으로 이녀석에게 달린 것만 같잖아. 근데 또 마냥 싫지만은 않은 이 기분은 뭐람.

시험이 끝났다. 으- 이렇게까지 공부 안 하고 친 시험은 처음이야. 최악의 점수가 나올 것만 같다. 아까까지만해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던 녀석이, 시험 마지막 교시를 알리는 종이 친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서 떠나갔다. 아마도 더 무서운 녀석-시험 성적표-으로 내 머릿속이 가득차버렸기 때문이겠지. 좀 더 빨리 떠나가줬으면 이런 고민을 할 이유도 없었을텐데. 한숨을 쉬며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지.

“어? 오늘은 일찍 가는거야?”

항상 누군가와 대화하는 녀석을 보면서 나에게도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아니 나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수백번도 더 상상해왔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나한테 말을 건 게 맞긴 한거야? 지금 내가 고개를 돌렸는데,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고 있는거였으면 어떡하지? 아니 그냥 이 상황자체가…

“오늘도 혼자 가? 항상 혼자 다니는 것 같던데”

그는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 정말 나한테 말한거였어? 바보같이 있지만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입은 얼어붙은 것만 같다. 항상 꿈꿔왔던 순간이 현실로 다가왔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거야.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혼자 가면 왜? 같이 갈래?”

!!!!! 내가 내뱉은 말이 내 귀에 들리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아니라는 걸, 뭔가 잘못됐다는 걸. 처음 대화하는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면 상대방은 무슨 생각을 할까?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게 아마도 빨갛게 달아오르는 모양이다. 너무 수치스럽다.

“그럼 같이 갈까?”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척 내 말을 받아 넘긴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생각들이 무색할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그래. 같이 가자.”

씩 웃는다. 항상 같이 다녔던 친구인 것마냥. 어쩌면 습관처럼 해왔던 상상들이 이제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