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르방 2019. 2. 6. 10:24

 엄마는 운전하는 아빠에게 항상 말을 걸었다. 아빠가 대답을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것이 운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옆에서 잠들지 않고 말을 걸어주는 것. 좀 더 나이가 들고 아빠에게 물었다. 그게 도움이 되냐고. 사실 아빠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얘기를 듣다 보면 길을 잘못 든다거나 사소한 실수들을 하게 된다고. 다정한 폭력. 그렇지만 엄마한테 얘기할 수 없겠지.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참담함을 알기에.


 차례를 지내던 도중 할머니는 울음을 터뜨리셨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웅얼하시다가 소리를 지르기도 하셨다. 놀란 건 우리 가족뿐, 자주 있는 일인지 다들 침착했다. 당신은 계속해서 '내가 죽는 것은 서럽지 않지만'을 반복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이 죽음을 서러워한다는 것을, 삶에 미련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당신들의 죽음을 상기시켰다. 내 제사를 그따위로 할 거냐는 할아버지의 외침에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돌아가시면 더 이상의 제사는 없을 것이라고.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멀리까지 수고스럽게 오실 필요 없으시다고.


 나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 한켠에서 우두커니 있었다. 싫은 티를 팍팍 낸 탓이리라.


 느그들 시집가는 것도 못 보고. 지금까지 본 결혼식이 몇 개인데 우리 결혼식까지 보셔야겠나. 언제부터 당신의 꿈은 우리의 결혼이 되었나. 서글펐다.


 창밖으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설과 추석이 지나면 이혼 접수가 늘어난다는 통계가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내년에는 저 소리를 듣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작년 설 이후로 할머니 댁에 온 적이 없으니 근 1년 만에 보는 것이다. 1년 사이에 살이 10kg 가까이 빠진 나를 보며 그들은 덕담을 가장하여 무례한 언사를 내뱉었다. 예뻐졌네, 참하다, 어디 고친 건 아니냐 등. 그들은 그런 말들을 무례하다고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화를 내더라도 나만 예민하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그들이 원하는 역할,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는, 을 행했다. 속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으려면 오지 않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