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08. 자기애

 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했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처리 상태 ‘취소됨.’ 취소 사유는 간략했다. ‘구매 중인 도서입니다.’ 대체로 희망 도서가 취소되면 서운한 감정이 앞서곤 하지만, ‘구매 중인 도서’라는 이유로 취소되면 기분이 좋다. 묘한 설렘이 몸을 감싼다. 나 말고도 누군가가 이 책을 원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또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왜 이 책을 읽고 싶었을까.

 도서관에 있는 몇몇 낡은 책 뒷면에는 작은 봉투와 함께 도서 대출 카드가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모든 처리 과정이 전산화되어 더 이상 쓰지 않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그 봉투와 대출 카드도 떼어냈지만, 몇몇 낡은 책에서 작은 봉투와 도서 대출 카드를 발견하면 가슴이 쿵쿵 뛴다. 멋진 필체로 적혀 있는 날짜와 대출자 명, 대출일과 반납일을 보고 있으려면 과거에 이 책을 읽었을 누군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 부분이 좋았었는데 이 사람들도 그랬을까, 지금도 이 근처에 살고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책을 좋아할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나의 우주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사랑한다. 과거 어느 시점에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 살았을 삶의 궤도나, 지금 나와 같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 삶이 궁금한 것은 그 호기심의 끝자락이 아닐까 한다. 나는 알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했던 당신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당신에 대하여. 아니, 어쩌면 그들의 삶이 궁금한 것은 지독한 자기애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했던 당신을 통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당신을 통해서 좀 더 나를 잘 알고 싶어요.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하여 좀 더 잘 알고 싶다는 이유로 나라는 우물 안으로 깊이 파고들곤 하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모든 특성은 타인과의 비교에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런 이유에서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알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을 통해서 나를 더 잘 알고 싶어요. 이것이 지독한 자기애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좀 더 격렬하게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타인을 알아갈 것이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나의 우주와 또 다른 누군가의 우주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겠지. 우리라는 이름 아래에 함께일 수 있겠지.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당신을 사랑할 것이고, 당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우주를, 우리의 우주를 넓혀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