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고는 했으나, ‘세입자 쫓아내는 건 건물주 마음인데 태아를 쫓아내는 건 왜 여성 마음대로 할 수 없느냐.’는 어떤 자매의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을 읽고 나서야 내 안의 잘못된 가치관들을 마주 볼 수 있었다. 섹스로 인한 쾌락이 죄라면 어째서 그 형벌은 여성에게만 내려지는가. 과거 한국은 생명의 소중함을 근거로 임신 중단을 반대하고 있었지만, 부분적으로 –우생학적, 유전학적, 전염성 질환이 있는 아기의 경우- 임신 중단을 허용함으로써 어떤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임신 중단당한 태아의 슬픔을 보다도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기와 그의 가족이 겪을 슬픔이 더 크지 않은가. 미처 보지 못했던 방향에서 새롭게 문제를 보게 되면서 임신..
2045년 12월 31일 일요일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하루인데 연말, 연초라고 부르면 괜히 특별한 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릴 때는 그 표현이 싫었다. 과거의 나에게 그 표현은 한 살 더 ‘늙어가는’, 그러니까 결혼 시장에서의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남성과의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지워버린 뒤로는 연말, 연초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한 해를 마무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일이 불안이 아니라 기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지난주 금요일에는 면접이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원을 뽑고 싶었던 만큼 지원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면접관으로서 면접 자리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는데, 내가 어릴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지원자들의 모..
엄마, 책을 읽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아. 입시 상담을 앞두고 선생님께서는 부모님과 진학하고 싶은 대학이며 학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오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자려던 엄마를 붙잡고 이야기를 꺼냈어.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가 말했지. "네가 원하는 곳이면 엄마도 좋아." 조금 망설이다가 천문학과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 모든 걸 다 잃은듯한 표정, 배신당한 표정이었어. 그날 우리는 늦게까지 언성을 높이며 싸웠지. "내가 너를 키우는 데 얼마가 들었는지 알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었어. 그 말이 나에게는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더는 나에게..
궁금했다. 그들은 탈코르셋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알고 싶었다. 나 또한 그것들을 얻을 수 있을지. ‘탈코르셋을 하고 진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어떤 자매의 탈코르셋 후기를 읽고서 충동적으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2018년 10월의 일이었다. 짧아진 머리카락에 화장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화장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안경 받침에 눌려 화장이 지워지는 게 싫어서 끼기 시작했던 렌즈도 더는 필요 없었다. 몸에 붙는 옷이며 높은 굽의 신발도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꾸밈 노동을 하나씩 내려놓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고통을 외면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탈코르셋을 통해 나의 고통뿐 아니라 나의 감정을 직면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그려놓은 행복이라는 그림에 맞추기 위해 연기했던 나날들, 타인..
1월 11일 토요일 [과제]: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한국에서 임신 중지 운동을 거치며 변화한 자신의 감정에 적용하는 글쓰기 책을 읽던 중 시선이 멎었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는 임신중지를 정말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임신중지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뿐 아니라 삶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임신중지는 오롯이 여성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4B-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다짐함으로써 임신, 출산, 그리고 임신중지라는 단어는 나와는 무관해졌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러나 책은 말하고 있었다. 임신중지는 나의 문제라고. WAAC는 여성이 "계획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자기 삶이 방해받지는 않으리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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