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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 12 31일 일요일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하루인데 연말, 연초라고 부르면 괜히 특별한 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릴 때는 그 표현이 싫었다. 과거의 나에게 그 표현은 한 살 더 늙어가는’, 그러니까 결혼 시장에서의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남성과의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지워버린 뒤로는 연말, 연초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한 해를 마무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일이 불안이 아니라 기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지난주 금요일에는 면접이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원을 뽑고 싶었던 만큼 지원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면접관으로서 면접 자리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는데, 내가 어릴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지원자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프로젝트와 역할에 대해서 말하는 모습이 멋졌다. 그들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려서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은 세대는 이런 모습이구나. 존재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그리고 그들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가 보기 좋았다. 면접을 복기하던 중 내가 그들과 함께 태어나서 자랐었다면 좀 더 멋지게, 나답게 살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내 세대에 태어나 나의 자매들과 함께 노력했기에 지금 그들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뒤를 이었고 나는 괜스레 뿌듯해졌다.

 신입 사원들의 눈에는 내가 꼰대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여자라는 이유로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나날들, 그리하여 남자들보다 악착같을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을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스물여섯의 내가 나혜석의 글을 읽으며 그의 삶에 공감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이 나의 삶에 공명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다른 상사들이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그들의 한계를 단정 짓지 않기를 바란다.

 작년에도, 올해도 면접에 참여했던 인사부장은 작년보다 올해의 지원자들이 더 재기발랄하다고 말했다. 점점 더 능력 있는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는 여성들이 많아진다고도 했다.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하루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더 나은 미래가 되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다가올 미래를 미리 본 탓일까, 여느 때보다도 이번 연말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내 손으로 뽑은 신입 사원들과 함께할 2046년이 그 어떤 해보다도 멋진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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