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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식사는 쉽게 거칠어진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힘들고 피곤하니까, 혼자인데 뭐 등의 이유로. 이른 아침의 신신도는 혼자 방문한 손님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밀도 높은 칠면조 가슴살을 얇게 썰어 입에 넣으며 혼자 먹는 식사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혼밥'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식사가 조금 거칠어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괜찮다. 대화로, 교감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혼자 하는 식사는 나와 음식 둘뿐이다. 식사가 거칠어지면, 서글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혼자일 때 더 좋다. 음식의 풍미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혼자서 프리미엄은 좀 과하지 않나 하는 고민도 잠시, 나를 위한 음식들이 하나둘씩 내 앞으로 다가왔다. 몽글몽글 구름 같은 스크램블드에그, 밀도 높은, 그래서 씹을 때마다 육즙이 흐르는 칠면조 가슴살,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간이 된 샐러드, 산미가 강한 커피. 일본에 미식 만화가 많은 건 그만큼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일까.
나를 잘 대접한다는 것은, 나에게 시간과 정성과 돈을 쓴다는 것은 '가성비'가 높다. 이거랑 이거 중 어떤 걸 더 좋아할지 고민할 일도, 이만큼을 해줬는데 그보다 못하게 받아 서운할 일도 없다.
일본 우유가 맛있다던데, 우유는 못 마셔봤지만, 버터가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주면 좋다. 대충 눈치로 알아듣는 게 태반이지만 뭐랄까, 그들의 일상에 녹아드는 기분이 들어 좋다. 어제 Stardust에서는 영어로 대해줘서 좋다고 했으면서!
은각사 곳곳이 짙은 이끼로 가득했다. 마치 푸른 융단 같았다. 누워서 온몸에 푸른 물이 들 때까지 굴러다니고 싶었다.
철학의 길. 어느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자주 산책했던 길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교수의 전공이 공학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공학의 길이였다면 지금만큼 명소는 아니었을걸.
구글맵에 '철학의 길'을 찍고 한참을 걸어 내려갔다. 어디서 많이 본 가게가 보였다. 요지야. 은각사-철학의 길-요지야 루트를 많이 간다는 게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나는 어쩌다 보니 철학의 길의 중간에 난입했고, 그 길의 끝에 도착한 것이다. 철학의 길 위에서 철학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니.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삶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 방향으로 다시 좀 더 걸을까 하다 그냥 그대로 내려왔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건 누군가가 지은 그 이름이 아니라,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초판' 에코백 사러 호호호좌 방문. 사실 어제 케이분샤에 갔다가 좀 실망했었는데 (나는 내가 '책'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읽을 수 없는 책에는 좀처럼 관심이 안가더라. 표지가 아무리 예뻐도) 호호호좌는 서점이라기보다는 '책도 있는 선물 가게'의 느낌이라 좀 더 만족스러웠다. 가게 한 쪽에 푸른빛의 도자기와 배지를 전시해두었었는데, 푸른빛에 마음이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다가 새 모양의 배지도 하나 집어 들었다. 에코백과 배지까지 3024엔! 지금까지 한 가게에서 지출한 금액으로는 가장 큰 금액이다. 놀라서 계산서를 몇 번 확인했더니 직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봤다. 이이에. 문제는 제 과소비죠. 하하. (눈물을 머금고)
아오오니기리. 꽤 인기 식당이었던지 작은 가게에 손님이 가득했다. 고민하다가 연어와 우메보시를 먹었는데 연어는 내가 생각한 연어가 아니었고, 우메보시는 너무 시었다. 우메보시와 간을 맞추려다 보니 결국엔 오니기리 하나를 다 입에 욱여넣고는 우물우물 먹고 있었다. 좀 많이 먹은 것 같다고 후회한 걸 보면 별로 만족스러운 식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난젠지 근방에는 다른 절과 정원도 많았다. 굳이 난젠지를 가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 여기저기 둘러보는 마음으로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무린안이라고 적힌 팻말을 분명 봤었는데 한자는 못 읽고, 영어는 안 읽어서 한참을 되돌아갔다. 눈은 장식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모양이다.
원래는 개인의 정원이었다는 무린안. 가만히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서양관은 좀 으스스했다. 다른 일정이 없었다면 무린안에 가만히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라미수가 맛있다는 체카. 지금까지 방문한 일본 카페 중에 분위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의 인생 티라미수가 될만한 맛. (물론 나에게도 인생 티라미수가 되었다!) 카페 오레는 컵보다는 밥그릇 느낌이 나는 그릇에 담아줬는데 그릇이 얇아 음료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창가 자리에는 친구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내가 오기 전부터 내가 떠날 때까지 있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원하는 자리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외로워졌다. 다음에 이곳에 오게 된다면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먹고, 다른 생각을 하고, 그걸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나란히 창가 자리에 앉고 싶다.
기요미즈데라. 본관은 공사 중이라 많이 아쉬웠다. 일본의 절과 신사들은 정기적으로 유지, 보수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벚꽃 시즌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기요미즈데라 외에도 많은 절과 신사가 조금씩 공사 중이었다. 아쉽다.
일본은 '기요미즈데라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간절함을 뜻한다고 하던데. 그때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이 힘들 거라는 것을 눈치챘었어야 한다.
기요미즈데라에서 내려다보는 교토가 멋지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교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라는 얘기도. 그래서 기요미즈데라고 가는 길에 많이 설렜다. 그러나 기요미즈데라 본관에서 내려다본 교토는 내가 생각한 모습과는 아주 달랐고, 그래서 실망스러웠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했던 교토는 골목골목이 예쁜 집으로 가득한 작은 동네였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교토는 높은 건물 위주의 스카이라인일 테니 말이다. 남들 좋다는 게 다 나에게 좋은 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에 대하여 한참 동안 생각했다.
일본의 카페들은 굉장히 빨리 닫는다. 어쩌면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쯤 열고 퇴근하는 시간쯤 닫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한국의 카페 체계가 너무 영업시간이 긴 걸수도 있고. 그렇지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는 여행자는 너무 아쉽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들이여.
저녁 식사는 초밥이었다. 아오오니기리에서의 연어 오니기리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연어 초밥을 먹고 싶어 방문한 스시테츠. 눈앞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줘서 좋았지만, 자릿세+음료 무조건 주문이라 생각보다 금액이 많이 나왔다. 이 정도 가격이면 규카츠를 한 번 더 먹는 게 더 만족스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열 한시가 넘었다.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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