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씁니다

19.09.28. 두나책

도하르방 2019. 9. 28. 19:03

 7주간의 글쓰기 작업을 마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에 편집자님은 다섯 개의 표지 시안을 보내주셨고 나는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선택했으며, 내가 썼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낸 내지 시안을 받았으며 내지 시안에 대한 나의 의견을 다시 편집자님께 보내드렸다. 내지 피드백의 피드백은 주말 중으로 다시 보내주신다고 하셨으니 이르면 오늘, 늦으면 내일 중으로는 받아볼 수 있겠지. 혹은, 그것보다 조금 더 늦어질 수도 있고.

 내 생은 사람과 보낸 시간보다 책과 보낸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타인과 나누고 싶었다. 조금은 우습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책을 통해 타인과 교류하고 싶다는 사실이. 우스워도 별수 있을까. 그것 또한 나의 일부인 것을.

 언젠가는 꼭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멋진 편집자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 사실, 나는 어떤 일이든 타인에게 맡기기보다는 내가 도맡아서 하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모든 일에 전문가가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타인과 함께 내 책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내 책이니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있었고, 내 글을 누군가가 편집해준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편집자님이 두나책 4기를 모집한다는 글을 봤음에도, 선뜻 먼저 손 내밀 수 없었다.

 이런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던 건 편집자님이었다. 책봄에서 진행되었던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서 몇 번 만났던 게 전부였던 나에게 함께 책을 만들어 보자.”라고 선뜻 손 내밀어주셨던 A 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글을 쓰는 내내 생각했다. 나도 몰랐던 내 글의 매력을 집어 주셨던 A 님 덕분에 좀 더 용기 내 내 생각을 펼칠 수 있었고, 내 가치관을 글로 담아낼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삶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건,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주신 A 님 덕분이라고, 그리고 용기 내서 그 손을 잡았던 과거의 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다음 주 중에는 마지막 편집 회의를 마치고, 책 인쇄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10월 둘째 주, 늦으면 셋째 주에는 물성을 가진 내 책을 받아볼 수 있겠지. 한글 파일로 만났던 원고를 책의 형태를 갖춘 내지 시안으로 만났을 때의 기분이 새로웠던 것처럼, 내지 시안으로 만났던 원고가 물성을 띈 책이 되었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겠지.

 나는 내 책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 말고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보낸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나에 대해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지금까지 나는 내 눈치를 보면서 어떤 선택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항상 타인의 잣대며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니, 나의 삶은 항상 불안했으며, 나는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해 종종거려야만 했다. 어쩌면 책을 만들고 싶었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생각과 가치관을, 그러니까 내 기준을 세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은 활자화되면서 좀 더 명확해지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했으니, 배수진을 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책이 내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감사하게도 편집자님이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신 덕분에 내가 만들었을 책보다 훨씬 더 멋지고 재미있는 책이 만들어졌다. 역시 모든 일에 전문가가 있는 건 이유가 있다.

 아마도 내가 또 책을 만들게 된다면, 그때도 A 님과 함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했던 생각이었는데, 표지 디자인과 내지 시안을 보면서 확신했다. ‘내가 또 책을 만들게 된다면, A 님과 함께하겠구나.’ 조금 더 내 생각과 가치관을 활자화하는 데 익숙해지면, 그때는 내 생각과 가치관을 이야기에 녹여서 활자화하고 싶다. 그러니까 동화나 소설과 같은 논픽션을 써보고 싶다. 짧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 염치없지만 A 님이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편집자님께 항상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과 함께 소설 원고를 보내는 날이 오기를.

'씁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10.05. 어떤 관계 1  (0) 2019.10.05
19.10.04. 계산  (0) 2019.10.04
19.09.26. 아르바이트  (0) 2019.09.26
19.09.24. 동생과 남동생  (0) 2019.09.24
욕심  (0) 2019.08.1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